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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 , 엔트로피 방향 역방향 순방향 ‘나’라는 주체의 환상

by 식스센스 정보 2025. 5. 11.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테넷' 은 복잡한 시간 구조와 화려한 액션, 그리고 난해한 플롯으로 유명하다. 많은 해설과 분석이 쏟아졌지만, 여전히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통찰, 즉 ‘주체(나)’와 ‘시간’에 대한 독특한 시선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인터넷에 흔히 떠도는 줄거리 해설이나 시간 역행의 물리적 원리 설명을 넘어서, 테넷이 우리에게 던지는 새로운 관점과 깊은 통찰을 탐구해보자.

 

 

영화 테넷 , 엔트로피 방향 역방향 순방향 ‘나’라는 주체의 환상
영화 테넷 , 엔트로피 방향 역방향 순방향 ‘나’라는 주체의 환상

 

 

시간의 역행, 인간의 인식 한계

'테넷' 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 역행’이다. 영화는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엔트로피의 방향’을 바꿔 사물과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움직이게 만든다. 이때 놀란이 관객에게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친절한 조언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의 언어와 논리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시간의 ‘순방향’에 익숙하다. 과거에서 미래로, 원인에서 결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테넷의 세계에서는 이 흐름이 뒤집힌다. 역행하는 존재는 여전히 자신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주변 세계는 거꾸로 움직인다. 즉,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경험된다. 이처럼 영화는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 자체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이 얼마나 낯설고 불안한지 체험하게 만든다.

 

주인공 ‘더 프로타고니스트’는 영화 내내 자신의 의지로 세계를 구하고, 사건을 주도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그가 사실상 자신이 설계한 거대한 계획의 ‘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즉, 그는 자신이 주체라고 믿었지만, 결국 미래의 자신이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테넷' 은 액션 영화의 전형적 영웅 서사를 해체한다. 일반적으로 영웅은 자신의 자유의지와 결단으로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테넷에서 주인공은 이미 결정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가 내린 모든 결정, 심지어 희생과 선택조차 이미 ‘정해진 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마지막에 ‘프로타고니스트’가 미래의 자신, 즉 ‘절대적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조종하는 존재로 성장함을 보여준다. 이때 주인공의 ‘자기 설계’는 일종의 솔립시즘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테넷>은 ‘나’라는 주체의 환상, 그리고 그 환상이 만들어내는 절대적 권력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무지의 역설과 자유의지

테넷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무지’의 중요성이다. 조직은 기록을 남기지 않고, 이름도 밝히지 않으며, 심지어 동료의 정체도 모른다. 이는 단순한 보안상의 이유를 넘어, 미래에서 과거로 정보를 역추적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한 장치다.

이러한 무지는 영화 속에서 ‘자유의지’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미래에서 보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고, 과거의 인물들은 그 흐름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인물들은 자신이 ‘선택’한다고 믿고 행동한다. 이때 무지는 오히려 자유의지의 환상을 지켜주는 장치가 된다. 즉, 모든 정보를 알게 되면 오히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게 되지만, 모를 때는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인다고 느낄 수 있다.

이 구조는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과도 닮아 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만약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허상에 불과할까? 테넷은 이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닐은 자신이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닐이 죽지 않으면, 주인공이 성공할 수 없고, 세계도 구할 수 없다. 이 희생은 시간의 역행 구조 안에서 이미 ‘정해진 일’이지만, 닐은 그 운명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장면은 인간의 ‘희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미 예정된 희생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희생일까? 아니면, 희생의 의미는 ‘결과’가 아니라, 그 선택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는 것일까? <테넷>은 시간의 순환과 반복,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성찰하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모든 것이 주인공의 미래 자아에 의해 설계되었음을 드러낸다. 이때 ‘악역’ 사토르조차도, 그의 배후 세력조차도 사실상 주인공의 계획 안에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구조는 ‘권력’과 ‘주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 우리는 정말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가?
  • 절대적 권력과 주체의 환상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해체되는가?
  •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마무리 정리

테넷은 단순한 시간 여행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시간의 구조와 인간의 인식, 그리고 ‘나’라는 주체의 환상과 한계,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의미와 희생의 가치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우리가 흔히 놓치는 통찰은 바로 이 지점, 즉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끝까지 의미를 찾고, 자기만의 선택을 하며, 심지어는 그 구조마저 스스로 만들어낸다고 믿는 존재라는 점이다.

결국 테넷은 우리 각자가 살아가는 현실과도 닮아 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고, 때로는 거대한 구조에 휘둘리며, 때로는 스스로 모든 것을 설계하는 주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가 진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선택’과 ‘그 선택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테넷은 그 점을, 누구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오직 ‘느끼게’ 한다.